빛바랜 골목의 이방인
링크 모음
감천문화마을 분위기 임시 이미지
웹소설 미리보기 1화 독점 공개
감성 판타지 / 로맨스

빛바랜 골목의 이방인

세상의 모든 색이 파장과 소리로 느껴지는 '기억 공방'의 시계수리공 한울. 그리고 골목길의 색을 집어삼키는 정체불명의 푸른 눈동자, 외국인 크리에이터 클로이의 스치듯 시작된 운명적 만남.

#감천문화마을 #기억공방 #색채판타지 #구원서사 #힐링로맨스

Chapter 01

빛바랜 골목의 이방인

#1. 감천문화마을, 차한울의 '기억 공방' (낮)

먼지 쌓인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이 공기 중에 떠도는 작은 입자들을 비춘다. 낡았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공방. 벽면 한쪽에는 온갖 종류의 드라이버와 펜치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작업대 앞에 앉은 차한울은 루페(확대경)를 낀 채 멈춰버린 놋쇠 회중시계의 태엽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시계에서는 아주 희미한, 그러나 따뜻한 주황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한울 (혼잣말)

“…따님의 첫 생일 선물. 꽤나 애틋했나 보군.”

그 순간, 창밖이 유난히 소란스러워졌다. 여러 나라의 언어와 웃음소리, 셔터 소리가 뒤섞여 공방의 고요함을 흔들었다. 한울은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힐끗 보았다. 시야를 가득 메운 알록달록한 지붕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겠지만, 그의 눈에는 달랐다. 지붕의 색들은 저마다 다른 파장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떤 색은 명랑하게 노래를 불렀고, 어떤 색은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차한울 (혼잣말)

“오늘따라… 유난히 들떠 있군. 성가시게.”

그는 창문의 낡은 블라인드를 내려 공방 안을 다시 어둡게 만들었다. 세상의 과도한 '색'은 그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2.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낮)

“Wow! Unbelievable! Guys, look at this color! It's like someone spilled a giant bucket of paint from the sky!”

요란한 분홍색 후드를 입은 클로이가 셀카봉에 달린 카메라를 향해 활기차게 외쳤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에 매료되어 반짝였다.

클로이 (카메라를 보며)

“여기가 바로 부산의 마추픽추, 감천문화마을입니다! 제 채널 'Chloe's Canvas' 구독자 여러분, 오늘의 색은 바로 이 '감천 블루'로 정했어요!”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좁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담벼락 위에서 유려한 몸짓으로 꼬리를 흔드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클로이

“Oh, kitty!”

고양이의 목에는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방울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홀린 듯 카메라를 든 채 고양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마치 그녀를 이끌기라도 하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복잡한 미로 같은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3. 공방 앞, 운명적인 (그리고 엉성한) 첫 만남 (낮)

블라인드를 내렸음에도 가시지 않는 소란스러움에 한울은 결국 한숨을 쉬며 공방 문을 열었다. 낡은 부품이라도 사기 위해 잠시 외출할 생각이었다.

“Watch out!”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울의 어깨에 무언가 부딪혔다. 중심을 잃은 그가 몇 걸음 비틀거리자, 그의 손에서 굴러떨어진 작은 나사들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클로이

“Oh my god! I'm so, so sorry! 괜찮아요?”

고양이를 쫓다 모퉁이를 돌던 클로이였다. 그녀는 연신 사과하며 자세를 낮춰 나사를 줍기 시작했다. 한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잠시 굳어 있었다. 영어는 고사하고 낯선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차한울

“아… 저… 괜찮습니다.”

그가 간신히 한마디 뱉었을 때, 클로이의 손등에서 기묘한 것을 보고 말았다. 그녀의 손등에 마치 물감이 묻은 것처럼, 아주 옅은 회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얼룩이 아니었다.

한울의 눈에는, 그 회색 얼룩이 주변의 건강한 색들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4. '어린 왕자' 벽화 앞 (낮)

한울과의 어색한 만남 후, 클로이는 놓쳤던 고양이가 저만치 앞서가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뒤를 쫓았다. 고양이가 멈춘 곳은 마을의 가장 유명한 포토 스팟,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벽화 앞이었다.

평소라면 관광객들로 붐볐을 곳이 이상하게 한산했다. 클로이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파란 망토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보다 훨씬 깊고, 선명한, 마치 살아있는 듯한 푸른색이었다.

클로이 (카메라를 보며)

“세상에… 이런 파란색은 처음 봐. 이건… 찍어야 해.”

그녀는 완벽한 구도를 위해 손을 뻗어 벽화 표면의 작은 먼지를 털어내려 했다. 손가락이 벽에 닿는 순간.

파삭-

마치 오래된 페인트가 부서지는 듯한 미세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끝에 푸른색 가루가 묻어났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손가락을 털었다.

그 순간, 멀리 떨어진 공방으로 돌아가던 한울의 가슴을 섬광 같은 통증이 꿰뚫었다.

차한울

“큭…!”

그가 고통에 찬 눈으로 마을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만 보이던, 마을 전체를 감싸던 거대한 색의 오라(Aura) 중 한 가닥이, 마치 끊어진 현처럼 힘없이 툭, 하고 소멸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주 작은 검은 점이 생겨났다. 모든 색을 집어삼킬 듯한, 불길한 무채색의 점이.

1화 미리보기가 끝났습니다.

마을의 색이 사라지기 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음 화에서 확인하세요!

작가 프로필

글쓴이 / 작가 공식 링크

«빛바랜 골목의 이방인» 공식 연재처 및 커뮤니티 모음

알림 메시지